동화 속으로 Into the Fairy tale 아나스트리아는 생경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시간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랬어야만 했다. 기묘한 바람이었다. 원래 바람이라는 녀석은 밤과 낮의 온도변화에 따라 동쪽 혹은 서쪽으로 부는 녀석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지는 않는다. 이것은 사관학교 시절에 배운 기본 상식이다. 그렇기에 그를 덮쳐온 바람은 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하는 할로윈(Halloween)의 밤에는 저승의 문이 열리고, 사자(死者)와 망령과 한기(寒氣)와 함께 온갖 이상한 것들이 세상으로 나온다.” 1 마침내 아젤은 괴물의 목 뒤에 에스터크를 박아 넣는 데에 성공했다. 괴물은 시취(屍臭)로 가득한 비명을 내지르며, 말라비틀어진 나무뿌리와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해골, 그리고 썩어...
그것은 침묵으로의 아집이었다. 퍼붓는 눈보라는 이미 얼어붙은 땅을 통째로 시랍(屍蠟)으로 만들겠다는 듯이 내리꽂았다. 그렇지 않아도 잿빛으로 가득했던 용의 안식처 북서부의 평원은 점점 더 윤곽을 잃어가며 희고 완곡한 껍질을 쌓아갔다. 함박눈이 앗아가 버린 것은 세계의 윤곽뿐만이 아니었다. 소리가 죽어있었다. 마치 눈이 모두 다 삼켜버린 것처럼. 그렇기에...
9 “드래곤이래.” “드래곤?” “그래! 드래곤족들이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아발라시아에서 커르다스로 내려왔다고…. 지금 커르다스는 난리도 아니래!”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리리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불안한 듯 두리번거렸다. 림사 로민사의 라노시아 점성원에 온 지 반 년이 지났다. 리리는 그동안 한 번도 커르다스의 리 가(家)에 돌아가지 않았고, 소식도 ...
5 “갔어요?” 등 뒤에서 들려온 아내의 목소리에 리요하임은 깃펜을 내려놓고 의자를 돌렸다. 리루미나는 리요하임에게로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겨 그의 옆에 앉았다. “응, 갔어요.” 리요하임은 리루미나에게 찻잔을 내밀었고 리루미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루미나는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만약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죠?” “그렇지 않을 거예요....
4 “애들은?” “잠들었어요.” “리와 슈아 둘 다?” “네. 리는 또 침대에 앉아 창밖만 보고 있더군요.” “수고했어요. 루미나.” 리요하임은 한숨을 쉬었다. “걱정이에요.” “무엇이 걱정이죠?” “리 말이에요. 저렇게 하루 종일 하늘만 올려다보고. 다른 애들처럼 계곡도 뛰어다니고 놀면 좋을 텐데.” 리루미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턱을 손으로 괴었다. 리루...
2 “리.” “냐버지?” 리리는 저 멀리 유성을 쫒던 눈동자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버린 커르다스의 언덕. 언덕마루의 큰바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별빛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다고 하여 리리가 별파도 언덕이라 이름붙인 그 언덕에, 여느 때와 같이 그녀가 앉아있었다. 리요하임은 리리를 부르고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냐버지,...
1 한 미코테의 이야기를 해줄게요. 무수한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다 차가운 바람이 구름을 밀어다놓으면 눈송이가 되어 떨어지는. 커르다스 외곽 어딘가의 하얀 설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어떤 어린 미코테의 이야기예요. …네? 커르다스에는 미코테의 부족이 살지 않는다구요?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요. 정확히는 ‘지금은’ 커르다스에 미코테 부족이 남아있지 ...
“쿨럭, 쿨럭!” 거친 기침소리와 함께 곡차와 타액이 뒤섞인 액체가 탁자에 가득 튀었다. 분명 무례한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온은 그 행위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시온은 불쌍한 것을 바라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요?” “주민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라고 권유해드렸습니다, 시장님.” 시장인 커노 남작은 시온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
레미나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혼란 속에서 조심스레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레미나는 자신이 수도원에 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저녁에 엄마 손을 잡고 사무엘 교회 언덕을 올랐고, 신부님을 만났다. 사무엘 신부님은 엄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한 뒤 레미나를 수도원의 숙소로 들어가게 했다. 여기까지는 레미나가 그동안 떠올렸던 풍경 그...
“재앵- 재앵-.” 6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시온은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가 있는 곳은 빈 예배당이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아치형 기둥은 입구로부터 양옆으로 나란히 세워져 높은 기둥을 떠받치고 있었고, 그 기둥 사이사이로 적갈색 장의자가 신도들을 기다렸다. 비어있는 신단 뒤에는 철십자를 안고 있는 커다란 성 엑스테리아...
검지만 결코 탁하지 않은 돌들로 쌓아올린 담장 밑에는 작은 틈이 있었다. 그 틈 사이로 뾰족한 코를 가진 생쥐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생쥐는 행복했다. 그는 아이비의 덩굴로 치장된 멋진 돌담을 집으로 삼고 있었고, 입 안에는 조금 전 훔쳐온 곡식들이 한 움큼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생쥐는 즐거운 기분으로 돌담 아래 자신의 보금자리에 양식들을 보관해두고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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